본문 바로가기

읽다

묵호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 2020년 11월 12일

묵호로 향하는 채비를 하며 이 책을 가방에 넣었다.

KTX 열차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읽고 있었다.

 

흥미로운 소재였고, 때문에 여행지를 이동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읽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역시 이런 게 좋다.

어디서 뭘 하든, 몇 시간 동안 뭘 하든- 크게 어긋난 행동만 아니면 구애받지 않는다.

 

강원도 동해시 논골길에 오르다 보니 벤치가 나왔고, 그래서 거기서도 읽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묵호 등대 박물관 근처를 서성이다보니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가 나왔고, 그래서 거기서도 읽었다.

이 때는 무척 열심히 읽었는데 그 만큼 흡입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 김연수 작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가다. 에세이도, 소설도, 달린다는 것도.

덕분에 김연수 작가의 많은 작품을 읽었는데 최근에는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다.

굉장히 산뜻한 느낌이 들었고 잘 읽히는 단편집이었다.

 

책장 정리를 많이 했음에도 그의 책은 몇 권 소장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에 대한 글은 늘 닮고 싶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스무 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이 있다.

- <Yes 24>에 올라온 작가 소개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 시적인 제목에 끌렸던 것일까?

손으로 만지면 이슬처럼 촉촉한 느낌이 들 것 같은 제목이다.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접했고 그건 행운이었다.

선입견 없이 흘러갈 수 있었고 작가가 이끄는대로 나 역시 방향지시등을 켤 수 있었으니까.

 

입양아 카밀라가 한국인 엄마를 찾아가면서 진실을 알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을 통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해지는 아픔도 느껴졌다.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낯선 곳에서 읽어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오직 이 한 권과 동행했기에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독했고, 오직 한 권이었기에 깊어질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_‘작가의 말’에서

타인에게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하고 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멈춰 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건너기 힘든 아득한 심연이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라는 일인칭 세계에서 ‘너’라는 타인에게로 시야를 넓혀온 작가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이르러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 전체를 조망한다.

 

- <Yes 24>에 올라온 작품 소개

 

 

제1부 카밀라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
사과라고 해도, 어쩌면 홍등이라고도
파란 달이 뜨는 바다 아래 오로라물고기
평화와 비슷한 말, 그러니까 고통의 말
바다의 파랑 속에 잠긴 도서실
얼마나 오래 안고 있어야 밤과 낮은

제2부 지은
검은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혹은 줄여서 ‘우리 사이’
짧게 네 번, 길게 세 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
지나간 시절에, 황금의 시절에
태풍이 불어오기 전날의 검모래 
그대가 들려주는 말들은 내 귀로도 들리고

제3부 우리
적적함, 혹은 불안과 성가심 사이의 적당한 온기
날마다 하나의 낮이 종말을 고한다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저기, 또 저기, 섬광처럼 어떤 얼굴들이 

특별전: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
1. 1985년 6월 무렵, 금이 간 그라나다의 뒷유리창
2. 1986년 3월 무렵, 에밀리 디킨슨의 시 
3. 2012년의 카밀라, 혹은 1984년의 정지은 

 

 

* 문장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바다에 던져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낮과 밤은 이토록 다른데 왜 이 둘을 한데 묶어서 하루라고 말하는지.
마찬가지로 서른 이전과 서른 이후는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걸 하나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 아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을까? 때때로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